2009년 05월 22일
지문인식기계 단상
작년 6월에 새로 지어진 우리 법원에는 청사보안시스템의 하나로 주요 출입처에 지문인식시스템이 있습니다. 근무시간 이후 청사를 출입할 때 제 오른 엄지 손가락을 쓱 들이밀면 기계가 1초 정도 제 지문을 읽은 후 ‘반갑습니다. Id 183번님!'이라는 메시지와 함께 문을 열어줍니다. 여기서 제 아이디 183번은 우리 법원에서 제가 183번째로 지문을 등록했기 때문이라는데, 형사재판을 하는 저로서는 간혹 위 아이디가 무슨 수용자번호 같아서 괜히 기분이 찜찜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이러한 지문인식시스템의 관련자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 시스템의 정확도와 오류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분의 말씀에 의하면 현재의 과학기술로 개개인의 지문을 거의 99.99%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는 시스템의 구현이 가능하기는 하답니다. 그러나 지문인식장치의 정밀도를 지나치게 고도록 세밀하게 설정해 놓은 경우에는, 출입자가 본인임에도 불구하고 아주 사소한 불순물이나 온도 및 습도변화로 인한 등록지문과의 차이를 타인의 지문으로 인식하여 출입을 거부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고 합니다. 반대로 이러한 점을 피하고자 정밀도를 낮게 설정하는 경우에는 등록자들과 유사한 타인의 지문을 등록자의 것으로 오인하여 승인하거나, 영화에서 보는 것과 같은 지문위조로 시스템이 뚫릴 수가 있다고 하는군요. 그래서 지문 뿐 아니라 홍채나 DNA등의 생체보안시스템의 관계자들은 항상 이러한 점들을 고려하여 적정한 정도의 선을 찾아 정밀도를 설정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아직 우리 법원 보안시스템에서 본인임에도 불구하고 기계가 지문인식을 잘못하여 문을 열어주지 않거나, 외부인임에도 본인으로 인식하여 문을 열어준 예는 없는 것 같습니다. 역시 기계가 하는 일이라 그런지 참으로 정확하더군요.
그런데 이 말을 듣고 보니 우리가 하는 형사재판에서도 이와 비슷한 경우가 많이 발생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원칙적으로 ‘무죄추정의 원칙’이니,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느니, ‘10명의 진범을 놓치더라도 1명의 억울한 사람이 발생하지는 않도록 하라’느니 하는 등의 말들로 형사재판에서는 검사에게 상당한 정도의 범죄 입증을 요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막상 재판에서 과연 피고인이 유죄인지 아닌지 판단해야 하는 경우, 관련 증거로 99.99% 이상 확신이 드는 경우에만 유죄판결을 한다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입증까지 요구하여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범죄자를 풀어주게 되는 경우가 발생할 것입니다. 반대로 적당한 증거와 심증만으로 유죄판결을 한다면 당연히 죄를 짓지 않았음에도 억울하게 처벌받은 사람이 발생할 수도 있겠지요.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우리 대법원도 판사가 어느 정도의 심증이 들어야 유죄를 할 수 있는가에 대한 기준으로 ‘합리적인 의심이 없을 정도’라는 기준을 제시하고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아직 경력도 짧고 우둔한 저로서는 과연 ‘합리적인 의심이 없는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 정확한 감을 잡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과연 어느 정도로 그물코의 크기를 잡아야 그물이 찢어지지 않는 범위 내에서 많은 고기를 잡을 수 있는 것일까요?
오늘도 아침 지하주차장에서 오른손을 기계에 들이밀고 183번 메시지를 본 후 사무실로 출근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손바닥만 한 작은 지문인식기계보다 못하여, 마땅히 풀어져야 할 사람을 범죄자로 오인하고 풀어주지 못하거나, 마땅히 가두어야 하는 사람을 잘못 인식하여 풀어주는 오류를 제가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괜스레 걱정이 되는군요. 새삼 저 작은 기계가 위대해 보이는 순간이었습니다.
# by | 2009/05/22 17:03 | 법조 마당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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