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4월 20일
형사재판에서 벌어지는 영화 '라쇼몽'의 한 장면
7인의 사무라이로 잘 알려진 일본의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을 세계적인 명장의 반열에 올려놓은 작품으로 누구나 주저 없이 바로 1950년작 ‘라쇼몽(羅生門)’이라는 영화를 꼽습니다.

먼저 영화의 대략적인 줄거리를 보시죠.
전란으로 어지럽던 헤이안 시대, ‘라생문’의 처마 밑에서 한 스님이 최근에 있던 살인 사건을 이야기합니다. 한 도적이 어느 무사와 함께 지나가는 그의 아내를 보고 욕정을 일으켜 그 무사를 포박한 뒤 그 아내를 강간했고, 얼마 후 그 남편은 가슴에 칼을 맞고 죽은 시체로 발견된 사건입니다.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도적, 아내, 무당의 입을 빌은 무사의 영혼, 목격자인 나무꾼의 증언이 이어집니다.
먼저 도적의 증언에 의하면, 자신이 무사의 아내를 겁탈할 때 무사의 아내가 처음엔 반항하다가 어느덧 그 겁탈을 즐기는 것 같았다, 이후 그 아내는 자신의 수치를 두 남자가 알게 할 수는 없다면서 둘이 결투를 하라고 했고, 결국 치열한 결투 끝에 자신이 무사를 죽였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러나 무사의 아내의 증언은 다릅니다. 어쩔 수 없이 겁탈을 당한 후 남편의 시선은 너무나 싸늘했고, 결국 남편 무사에게 자신을 죽여달라고 대들다가 혼절한 후 깨어나 보니 남편이 가슴에 칼을 꽂고 죽어있었다는 것이지요.
한편 죽은 무사의 영혼은, 도적의 유혹에 넘어간 아내가 도적에게 무사를 죽이라고 부탁했고, 이에 무사의 아내에게 실망한 도적이 무사에게 아내의 운명을 결정하라고 했으나 무사는 그 아내를 용서하고 스스로 자결한 것이라고 증언합니다.
그러나 이 사건을 목격하였다는 나무꾼의 증언은 또 다릅니다. 겁탈 후 도적이 무사의 아내에게 결혼해달라고 했고, 무사와 도적은 서로 싸우기 싫어했지만 무사 아내의 부추김에 서로 부끄럽고 옹졸한 개싸움을 벌이다가 무사가 죽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사건의 진실은 하나인데, 과연 자살인지 타살인지, 타살이라면 범인은 도적인지 그 아내인지, 그리고 그 경위는 도대체 어떻게 진행된 것인지 네 사람의 증언은 모두 그럴듯하지만 서로 모순되어 사건은 도무지 알 수 없는 미궁에 빠지고 맙니다.
이 영화의 성공 이후 화자의 주관적인 입장에 따라 서로 다른 진실을 이야기하는 진행방법은 영화계에서 보편적인 기법이 되었고, 이후 ‘유주얼 서스펙트’나 ‘영웅’ 등 손으로 셀 수도 없을 정도의 수많은 영화들이 이 영화의 영향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형사재판을 하다보면 하루에도 여러 번씩 이런 ‘라쇼몽’ 같은 영화를 법정에서 실제로 접하게 됩니다.
범행을 자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사건이야 그렇지 않지만, 법정에서 자신의 범행을 부인하는 사건은 결국 그 범죄의 피해자나 목격자 등을 증인으로 불러 신문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 증인이 가해자인 피고인측 증인이냐, 피해자측 증인이냐, 그리고 그 증인이 피고인 혹은 피해자와 어떠한 이해관계를 갖고 있느냐에 따라 그 증언의 내용이 180도 달라지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사람의 기억력은 늘 불완전하지요. 그래서 심지어 판사들끼리도 우리끼리의 회식자리에서 있었던 여러 에피소드에 대해 전부 말이 다른 것을 보고, 이러니 증인들 말이 서로 다르다고 뭐라 하면 안된다는 농담을 하고는 합니다.
그러나 단순히 기억의 문제가 아니라 어떠한 사정과 목적에 의해 증언의 내용이 완전히 달라질 때는 정말 많이 답답합니다. 피해자는 피고인이 병을 깨서 협박을 했다고 하는데, 어느 증인은 그 피고인이 그 시간에 그 자리에 있지도 않았다고 증언하는 한편, 어느 증인은 자기 눈으로 분명히 보았다고 증언합니다. 또 다른 사건에서 누구는 피고인이 폭탄주를 만들다가 자신에게 병을 던졌다고 주장하는 반면, 다른 증인은 당시 폭탄주를 만든 사실도 없고, 오히려 자신이 피고인을 먼저 때렸다고 주장합니다. 또 어느 증인은 피고인과 피해자가 돈을 주고받는 자리에 함께 있었다고 주장하는 한편, 어느 증인은 그 증인이 현장에 아예 있지도 않아 돈을 주고받는 것을 볼 수도 없었다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여러 증언 중에서 어느 하나만이 진실인 경우도 있고, 모두 거짓이 섞여 있되, 그 증언들에 숨어 있는 진실들을 퍼즐 맞추듯 조합하여야만 진실을 알 수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따라서 그런 숨은 진실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증인들이 피고인이나 피해자와 맺고 있는 이해관계를 알아야만 하기 때문에 증인신문은 더욱 복잡해지고, 증인과 피고인 간의 10년 전 관계까지 캐물어야 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합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나거나 자주 반복하다보면 이젠 증인이 자신의 증언을 정말로 사실이라고 믿어버려서 이제는 정말로 되돌릴 수 없는 경우도 발생하고는 합니다.
물론 이렇게 법정에서 사실을 이야기 하지 않는 자들을 위증죄로 처벌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과연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느 부분이 거짓임을 자신 있게, 그리고 정확히 집어내어 위증죄로 처벌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물론 이런 이유로 위증죄나 무고죄는 일단 밝혀지게 되면 매우 엄하게 처벌하고 있기는 하답니다.
오늘도 선고를 앞두고 있는 사건을 검토하며 마음속으로 희망합니다. 이 판결 이후 ‘역시 법정에서는 거짓말을 해도 판사들이 쉽게 속지 않데.....’하면서 거짓말을 한 당사자들이 고개를 저었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한편으론 불안하기도 합니다. ‘내가 정말 순진한 눈빛으로 거짓말을 했더니 역시 판사도 속더구먼....’이라고 어둠 속에서 씨익 웃는 사람들은 없을는지요.
예전에 저는 이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나에게 1주일 뒤의 미래를 볼 수 있는 능력만 있다면 매주 로또를 사거나 주식을 해서 대박을 터뜨릴 수 있겠다고.....
하지만 오늘도 마찬가지고, 요즘엔 종종 이런 바램을 갖고는 합니다. 하나님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오로지 판사들에게는 과거의 10분만이라도 볼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해주셨으면 좋겠다고...아니,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보지 않고도 사람들의 거짓말을 알 수 있는 지혜라도 넘쳤으면 좋겠다고....
# by | 2009/04/20 00:44 | 법조 마당 | 트랙백 | 덧글(2)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