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의 불온서적 지정과 그에 관한 법무관들의 헌법소원

 

국방부의 군 불온서적 지정에 대한 법무관들의 헌법소헌 신청에 관하여, 신문들도 그렇고, 오늘 출근을 하면서 들은 라디오 시사토론 프로그램의 예고 문구도 그렇고, 이러한 불온서적 지적이 잘못되었다는 주장과 법무관들의 헌법소원 신청이 정당했다는 주장으로 나누어 토론을 진행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그런데 이 부분에 관해 조금 이해하기 어려운 점들이 있다.


이 부분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먼저 국방부의 불온서적 지정이 군의 기강확립을 위해 군이라는 특수한 조직체 내에서는 반드시 필요한 조치인가, 아니면 군인이기 전에 한 명의 국민이고 인격체인 병사들의 사상의 자유를 제한하는 시대착오적인 발상인가 하는 부분이 쟁점이 되어 다툼이 되어야 한다.


그 다음으로, 위 지정조치가 위법하다고 하여도 군의 기강을 해치면서 군법무관들이 헌법소원을 제기하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인가, 아니면 가사 위 조치가 정당했다고 하더라도 그 지정조치에 위헌적인 요소가 있는지 헌법재판소에서 최종적인 판단을 받고자 할 권리는 누구에게나 보장하여야 하는 것인지가 쟁점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위 불온서적 지정조치가 정당했는지 여부와 위 지정조치에 대하여 군법무관들이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 있는지에 관한 문제는 별개로 논의되어야 할 사안인 것이다.


물론 위 조치가 위법하다면 아무리 군이라고 하더라도 이에 관하여 다툴 권리는 보장하여야 한다는 논리로 진행될 가능성이 많지만, 위 지정조치의 위헌성 여부는 헌법재판소에서 최종적으로 판단될 것이므로(헌법소원의 대상이 맞고, 신청인적격이 인정된다는 전제에서), 처음부터 위 처분의 위법 여부를 전제로 헌법소원 문제와 함께 논의를 진행하는 것은 자칫 이야기가 산만하게 돌고 돌 가능성이 아주 높다. 또한 위 불온서적 지정조치가 지금 다시 문제되고 있는 것은 군법무관들의 헌법소원 신청으로 인한 것이므로, 결국 지금 논의의 핵심은 위 지정조치의 부당 내지 위헌 여부과 무관하게, 군법무관들이 군 명령체계에 의하지 않고 군의 처분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 있느냐...문제로 정리가 되어야 할 것 같다.


또한 한 가지 더 지적하고 넘어갈 일은, 위 지정조치 자체가 문제였던 것인가, 아니면 군이라는 특수성상 불온서적을 지정하는 행위 자체는 용인될 수 있지만, 이번 지정조치에서는 도저히 불온서적이라고 볼 수 없는 책들까지 소위 금서로 지정하여 병사들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한 것인가 하는 부분도 구분하여 살펴봐야 한다.


이런 여러 쟁점에 관하여 사실 내 의견은 아주 명확하지만 각 사안에 대한 내 의견과 무관하게, 어떠한 사안에 관해 토론을 진행하려면 우선 그 토론에서 쟁점이 되는 부분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러한 쟁점에 관한 견해를 어떻게 정리하여 논의에 부쳐야 하는지가 먼저 정리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쓸 데 없이 감정싸움만 하거나 같은 이야기가 돌고 도는 문제를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회사에서 진행되는 회의도 그렇고, 여러 시사토론 프로그램도 그렇고, 이러한 부분을 깔끔하게 정리하는 진행자를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by 이지스 | 2008/10/27 08:57 | 시사 마당 | 트랙백 | 덧글(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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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愚公 at 2008/10/27 11:16
회사에서 진행되는 회의도 그렇고, 여러 시사토론 프로그램도 그렇고, 이러한 부분을 깔끔하게 정리하는 진행자를 찾기가 별로 쉽지 않다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 사회는 학교가 아니니까요. 비전공자에게 전공분야의 쟁점 설명하기가 어렵지요.
보통 편한 방법은 찾게 되는데 영 찜찜합니다.
Commented by 이지스 at 2008/10/27 13:51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한 경우도 있겠지만, 논리적인 사고를 할 수만 있다면 대부분은 어느 정도 정리될 수 있지 않을까요?
Commented by 愚公 at 2008/10/27 14:54
'전문적인 지식'처럼 '논리적인 사고'도 어느정도는 능력인지라 기준치에 도달하지 않은 상대에게 이해시키는 게 어려운 것은 비슷한 것 같습니다. -_- 그렇다고 설명을 아예 안할 수는 없지요.
Commented by Luthien at 2008/10/27 11:17
약간 거슬러올라간 이야기입니다만, 불온서적 지정사유는 해당 서적들이 한총련 권장도서로 올라가자 그 목록을 그대로 Ctrl C & V 한 것이라는군요.
구체적 자체심사과정을 거치지 않았다는 점도 문제의 소지가 될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이지스 at 2008/10/27 13:52
네. 그건 지정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지정대상을 잘못 선정하였다는 이야기가 되겠군요.
Commented by 좌백 at 2008/10/27 12:11
나 군대 있을 때는 진중문고 외에는 소위 "사제 책"이라 부르는 그 어떠한 책도 (원칙적으로) 병영 내에 들여올 수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이런 문제가 없었던 듯. 노친네 옛날 군대 이야기 하는 것 같아서 나도 싫지만, 이번 사건 자체가 나한텐 딴나라 이야기 같아.
Commented by 좌백 at 2008/10/27 12:16
아, 원래 댓글 다는 이유는... 네번째 단락 두번째 줄 -아니면 가사 위 조치가 정당했다고 하더라도-에서 '가사'가 무슨 뜻인가 물어보려고. 보통은 가령, 설사 등이 사용되는 문맥인데... 이쯤 쓰다가 네이버 검색이 먼저지...하고 찾아보니 이런 게 나오는군.

가사 [假使] [부사] =가령(假令)

이거 맞나?
Commented by 얼음칼 at 2008/10/27 13:41
그래, 그거 맞는데, 가사라는 단어를 잘 안쓰니?
Commented by 카구츠치 at 2008/10/27 13:53
가사가 쓰이는 것은 판결문 이외에는 본 적이 없군요.
Commented by 이지스 at 2008/10/27 13:56
혹시 일본식 용어인지는 제가 잘 모르겠는데, '가사'라는 말은 '설사'와 함께 법조계에서는 아주 일반화된 단어입니다. '혹시' 정도를 쓰면 알기 쉽고 적당할 것 같지만, 입에 붙어서 자꾸 쓰게되네요...
Commented by 愚公 at 2008/10/27 14:57
'설사', '가령'은 다른 분야나 일반상황에서도 많이 쓰이지만 '가사'라는 용어는 한문 고어투 경향이 강하지요. 사서에 나오기는 합니다만 요즘은 일상에서 사용치 않는 줄 알았습니다.
Commented by 좌백 at 2008/10/27 15:03
얼음칼 형// 저는 처음 봤어요.

카구츠지// 판결문을 볼 일이 별로 없어서 그만...^^

이지스// 일본식 용어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보다 '이 뺀 자리 그냥 두는 것보단 임플란트 하는 게 낫다'와 '(여러가지) 사정 상 하는 수 없이 하는 경우 외엔 틀니보다 임플란트가 낫다'라는 두 명제가 일반적으로 참인지 가르쳐줘. 29일까진 선택해야 한다구...-_-
Commented by 이지스 at 2008/10/27 16:18
좌백// 1. 흠...이상하네. 전 법조인이 되기 전에도 저 말을 알고, 간혹 쓰기도 한 것 같은데요...
2. 일반적으로는 참입니다. 금전적으로 부담이 돼서 그렇지, 결과만 놓고 본다면 분명히 참인 명제지요.
Commented by 디온 at 2008/10/28 19:59
현재 군대 안에서는, 불온서적 지정이라는 상황 그 자체가 코미디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분위기입니다.
Commented by 이지스 at 2008/10/29 10:18
오오, 현역 군인이 블로그 운영도 할 수 있고.....정말 많이 달라졌군요^^;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8/10/29 12:00
이글루 안에 제가 아는 현역군인도 여럿 있지요(...)
Commented by punctual at 2008/10/30 17:25
가사라는 말 많이 쓰시던데...요..




이지스님 글 보면 ^^;;;
Commented at 2008/11/07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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