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은 아프지만...

오늘 오전 선고한 사건 중에 내가 주심인 의료사건이 2개 있었다.

하나는,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유명인사가 피고인 사건인데, 심리를 하면서 무척 분노했던 사건이고, 하나는 어렵게 간이식 수술을 받은 환자가 그 이후 진행된 치료에서 여러 합병증이 발행하여 사망한 사건이었다.

전자는 자칫 그 파장이 우려되기 때문에 여기서 언급할 성질의 것은 아니지만, 후자는 선고를 하면서도 사실 많이 안타까운 사건이었다.

결국 원고의 청구를 모두 기각했는데, 부장님이 원고의 청구를 모두 기각한다...는 판결을 선고하자 자리에 앉아 있던 원고(사망한 남편의 부인)가 납득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재판부를 쳐다보다가, 결국 터져나오는 울음을 억지로 참으며 조용히 재판정을 빠져나갔다. 나와 부장님 모두 의견이 일치하여 내린 결론이고, 지금도 그 결론이 타당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조용히 빠져나가는 그 당사자의 뒷모습이 아직도 계속 마음에 걸린다.

그 사건에서 원고의 사정을 들어보면 참 딱한 부분이 많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의료사고에서 의사에게 책임을 물으려면 의사의 진료상 과실이 인정되어야 하는데, 대부분의 당사자들은 나쁜 결과 그 자체만으로 의사의 과실을 인정해달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의사가 최선을 다하면 모든 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점이 전제되지 않는 이상, 병을 고치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혹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도중 상태가 더욱 악화되었다는 점만으로 의사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없는 일이다. 의료행위에는 의료진이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막을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한다. 그러나, 환자들이 보기에는 의사들이 다수의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는 점을 잊은 채 자신에게만 모든 노력을 다해주길 기대하는 마음에서 의사들의 진료를 자신에게 최선을 다했다고 느끼지 않고, '의사가 최선을 다했다면 이러한 결과를 막을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 '최선'이 무엇이었는가, 그리고 과연 인정되는 '최선'을 다했을 때 다른 결과가 나왔을 것인가 부분은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할 내용이 많다.

운이 좋아 명의를 만나 치료가 성공하면 좋았겠지만, 평범한 의사를 만나 치료가 실패했다고 해서 '누구는 고치는데 당신은 이게 뭐냐, 물어내라' 고 주장하는 것은, '남들은 그 병 안걸리고 건강하게 잘 사는데, 당신은 왜 그 병이 걸려서 고생이냐' 라는 말만큼 부당한 말이다.



물론 '실력 없음'과 '과실'의 경계가 어느 선인지는 논란의 여지가 많고, 그에 대해서 아직 나는 제대로 된 정답을 알고 있지는 못하다.

그러나, 자신의 실력 범위 내에서 잘못된 결정을 내린 실력 없는 의사와, 실력은 있으나 과실에 의해 잘못된 결과를 낸 의사의 경우, 같은 악결과를 내었으나 전자는 용서를 받고, 후자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도 뭔가 부당하지만, 그렇다고 통상적인 의료기술에 비추어 (다른 판단을 했으면 좋았겠지만) 그 판단에 과실이 없는 실력 없는 의사를 벌하는 것도 온당해 보이지는 않는다.

이러한 문제는 비단 의사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바로 내가 하는 일만해도, 판례와 법규에 어긋나는 과실은 없지만 경험과 실력이 부족해서 잘못된 사실인정을 하는 경우가 어찌 없겠는가.

오늘 의사와 법관에 대한 원망을 가슴에 가득 품고 돌아갔을 그 당사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이 사건 역시 실력 없는 법관의 잘못된 오판이라면 어쩌나....하는 생각을 잠시 했다. 하지만 아무리 원고가 딱하다고 해도, 내 실력으론 보이지 않는 의사의 과실을 억지로 인정하거나, '당신, 좀 더 실력 있는 의사가 되지 못한 죄로 이거 책임져라'라고 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가슴은 아프지만, 때로는 남의 탓보다 자신의 박한 운명을 탓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는 냉정한 현실을, 울며 돌아간 그 원고가 언젠가 깨닫게 되길 바랄 뿐이다.

by 이지스 | 2006/06/28 17:06 | 법조 마당 | 트랙백 | 덧글(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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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푸른마음 at 2006/06/28 17:12
그저 착잡한 마음을 가지면서 사고 자체가 일어나지 않기만 바랄 뿐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Commented by Louise at 2006/06/28 17:16
선배님이나 저나 어쩌면 평생을 걸고 고민해야 할 주제이겠지요. 그 고민 하라고 국록을 받는 것이라 말해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Commented by ecotary at 2006/06/28 18:03
네가 이런 마음을 품었다는 것을 그 원고가 알아주었으면 참 좋겠다.

힘내라 (토닥토닥)
Commented by 冷箭 at 2006/06/28 18:36
정말 그쪽 회사일은 힘든 일이군요.
원고께서 언젠가 깨달으시겠죠.
Commented by 이지스 at 2006/06/29 12:20
푸른마음,ecotary,냉전// 고맙습니다.

Luise// 맞는 말이다.
Commented by 감정의폭주족 at 2006/06/29 14:36
힘내라. 한가해지면 시원한 소주 한잔 하면서 시린 가슴이나 씻어보자.
Commented by 이지스 at 2006/06/29 15:56
박언니// 아니, 뭐 별로 힘들거나 하지는 않은데 다들 힘내라고 하니 좀 민망하군^^
Commented by 놀고먹냐 at 2006/07/01 00:16
인생과 직업에 대한 통찰이 느껴지는 (드물게 ㅋㅋ) 훌륭한 글입니다. 짝짝짝~
Commented at 2008/07/22 17:49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이지스 at 2008/07/23 13:58
음....아마도 서울고등법원의 항소사건 때문인가 보군요. 좋은 결과 있기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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